[정현선칼럼] 간호사도 감정 위안이 필요한 사람

우리의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감정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 거나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

그 답은 오롯이 집 에 가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사실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제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인간적일 수 없는 강요된 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나의 모습이 아닌 간호사 정현선으로 일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눈물 한 방 울 내비치면 “프로답지 못하다”라는 말을 듣는 게 현실이다. 사실 프로답지 못하다고 말하며 울지 않아야 하지만 우린 아픈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울 수밖에 없는 엄청난 무게의 통각을 느끼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때 시청률 40%를 찍었던 MBC 드라마 “다모”의 유행어였다. 이 대사는 알고 보니 정말 과학적이었다. 뇌 안에는 공감 신경회로가 있다. 타인 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 관여하는 회로가 있어 타인의 아픔을 지켜보면, 우 린 그 사람과 같이 괴롭고 슬픈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 했다.

아픈 사람들 곁을 24시간 지키고 있는 우리들이야말로 통각을 느끼는 부분이 활동 중이니 그 고통은 가히 짐작할 만하지 않는가? 그러니 환자 의 통증 점수를 근무마다 사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런 통각과 스 트레스 지수도 함께 사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호사는 바람직하다고 요구되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흔들리 지 않는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 판단을 하는 간호사여야 했지만, 때때로 당황하기도 했다.

6월, 검게 변해만 가는 그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했다. 밤 근무로. 태국 국적이라고 인계가 왔다. 원인미상의 발열. 그는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누워있는 것일까?

외국인 환자가 오니 문득 지난번 옆 팀에 베트남 국적을 가진 환자가 생 각났다. 딸의 집에 관광차 왔다가 암으로 인해 흉수가 차고, 산소포화도 가 떨어져서 입원했던 환자. 그때 선배 간호사가 이곳저곳 전화를 하며 처 치 비용을 알아봤었다. 관광비자로 들어온 그의 입원비용을 최소화하려 고…..,

그때 이해가 안 가서 선배에게 말 한마디 내뱉었다. “왜 우리가 외국인에게 그래야만 해요? 우리가 열심히 일한 돈으로 세금 을 내고, 그 돈이 어딘가에 새고 있다면 불공평하잖아요.” 혈세 낭비라고 생각하며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서 기억 속에 잊혀졌다.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때 그 선배의 행동이 이해가기 시 작했다. 간호사로서의 시선. 건강보험으로 병원비 감면 혜택은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당연한 권리라 한다.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자 온 외국인을 “먹튀”, “무임승차”라 표현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금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간호사로서의 시 선은 달랐다. 더욱이 태국 국적의 환자를 바라본 그 순간 나도 뭔가 해주 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간호사였지. 그때 선배도 간호사의 마음으로 환자를 본 거였구나.’

《한국간호사 윤리지침》 제7조(평등한 간호 제공)를 보면 『① 간호사는 간호 대상자의 국적, 인종, 연령, 성별, 정치적·사회적·경 제적 지위, 성적 지향을 불문하고 차별 없는 간호를 제공하여야 한다. ② 간호사는 간호 대상자의 종교와 신념,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여야 하며, 자 신의 종교적 관점과 신앙 행위를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간호사는 간호 대상자의 관습과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라고 나와 있다.

인간으로 같은 존엄함을 가진 그 사람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으 로서의 존엄함은 같은 것이었다. 인종, 나라 모든 것에 상관없이 같은 인 간이라는 시선. 보험 분류를 일반으로, 모든 처치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상황은 그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태국 국적의 사나이. 나라가 가난해서 낯선 땅에 돈 벌러 온 사람일까?라고 추측도 해보았다.

사연이 궁금했지만 들 을 수 없었다. 그는 점점 출혈의 흔적으로 얼굴은 검게 착색되어 갔다. 검사실 직원은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반신반의하며 계속 결과를 올려도 되냐고 20번 되물었다. 응급상황이라고 말했지만 계속 의심했다. 그 얼굴을 봤더라면 그런 의문은 싹 사라졌을 것이다.

사지의 청색증과 혈변을 계속 보고 있는 그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선후배 간호사와 함께 이런 대화가 오갔다. “말 한마디 못 알아듣는 곳에 누워있는 그는 무슨 생각이 들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가 느낀 불안과 무서움은 어디까지일 까 생각을 해본다. 그는 그날 밤 중환자실로 갔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나는 연민의 감정으로 뒤척였다. 마땅히 치료를 위한 처치 말고는 해준 게 없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나? 내가 그를 본 시선은 간호사로서의 시선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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