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 개최

의사 인력 부족으로 간호사가 대리 처방, 대리 의무기록 작성, 대리 시술·처치·수술까지

더너스 승인 2021.05.14 00:00 | 최종 수정 2021.07.23 16:30 의견 0
2021 국제 간호사의 날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보건의료노조
2021 국제 간호사의 날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나순자)는 제50주년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1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 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불법의료 고발 현장 좌담회를 진행했다. 좌담회에서는 외과계 PA 간호사와 중환자실 간호사가 참가해 직접 경험한 불법의료 사례를 증언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코로나19와 싸우는 간호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에 만연한 불법의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며 좌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의사가 부족해 의사 업무를 하는 PA 간호사가 전국에 1만 명이 넘는다”며“이들이 하고 있는 의사 업무는 명확히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2019년 의사협회의 고발로 검찰이 대구와 부산,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을 수색한 사례를 언급하며 “의사 업무를 하는 간호사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일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환자들을 속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PA란 Physician Assistant의 준말로 진료보조(의사보조) 인력을 뜻한다. PA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병원에 존재하는 직역이다. 대개 간호사 위주로 구성되는 PA(응급구조사·임상병리사 등 간호사 외 PA도 존재)는 의사가 아니지만 처방, 각종 의무기록 작성을 비롯해 시술, 수술 등 의료법상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PA는 의대 정원 감축·동결과 전공의 특별법(주 80시간제) 시행에 따라 부족해진 의사 인력을 대신해 실질적인 의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나 위원장은“정부도 의사 부족으로 인해 만연한 불법의료 문제를 이미 알고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불법의료 문제와 보건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파업을 불사한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선영 정책국장이 병원 현장의 불법의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은 노조가 올해 4월 전국 50여 개 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및 2020년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국 26개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에서만 간호사 1,680여 명이 PA로 일하고 있으며, 26개 병원 중 PA 간호사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는 병원이 15.4% 달했고 절반 이상의 병원에서 50명 이상 99명 미만의 간호사가 PA로 일하고 있었다. 오 국장은 병원에서 가장 많이 벌어지는 5대 불법의료로 ▲대리 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를 꼽았다.

의사 업무를 전담하는 PA 간호사 외에도 병동과 외래,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일반 간호사 역시 대리 처치와 시술, 처방 등 불법의료를 대부분 경험하고 있었다. PA 간호사는 전체 근무시간 대비 의사 업무 비중이 68%라고 답했는데, 일반 병동 간호사도 근무 시간 중 37% 동안 의사 업무를 대리한다고 답했다.

오 국장은 “의사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환자 치료와 안전에 직결된 업무가 PA와 일반 병동 간호사들에게 점점 더 많이 전가되고 있다”며 “PA와 간호사가 하는 의사 대리 업무는 정규 교육과정이나 자격조건을 갖춘 행위가 아니기에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은 물론, 의료사고 등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행위자(PA 및 간호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다”고 꼬집었다.

좌담회에 앞서 현직 간호사들의 증언 영상이 상영됐다. 전국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조합원들은 “불법의료를 하지 않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며 병원 현장에 불법의료가 일상처럼 이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영상 인터뷰에 응한 한 간호사는 “의사와 간호사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며 불법의료 지시를 거부했을 때 의사에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너 하나 자를 수 있어” 등과 같은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의사가 지시한 의사 대리 업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의적인 업무 반복 지시, 부서 이동, 업무 박탈 등 보복을 당했던 경험담이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면허 취소나 법정 소송까지 늘 염두에 두면서 일하고 있다”거나 “(불법의료로 인해) 환자가 혹시나 추후에 부작용을 겪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일한다”는 진술도 있었다.

현장 좌담회에는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했다.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D 간호사는 “(재직 중인) 병원에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먼저 의사 아이디로 처방 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반면 인턴 의사, 전공의의 경우 처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결국 환자들 처방은 모두 간호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D 간호사는 동료 간호사가 의사의 “늘 주던대로 줘”라는 말을 듣고 고위험 약물을 처방했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렇듯 처방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의사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사가 해야 하는 처치와 의료기기 조작을 대신하다 문제가 생긴 사례도 증언됐다. D 간호사는 “불법 의료는 운전면허가 없는 아이에게 운전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법행위를 지시·조장하는 병원 사용자에게 정부가 패널티를 주는 등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외과 PA로 근무하는 A 간호사는 집도의가 바빠 수술실에 늦게 들어올 경우 집도의가 오기 전까지 대신 수술을 집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히며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네가 거기 있으니 네가 좀 해라’ 지시해 충수돌기(맹장), 담낭, 위장 절제까지 하곤 했다”고 밝혔다. A 간호사는 “사실상 전공의(수련 레지던트)를 넘어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전임의 수준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했다.

A 간호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규 간호사때부터 PA 업무를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문제를 인식하고‘불법의료행위를 못 하겠다’며 의사-간호사 간 업무 분담을 요청하자 “일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고 경험담을 밝혔다. 이어 A 간호사는 “PA 간호사로 경력은 있지만, 일반 간호사 일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받아 줄 부서는 없고, 당시 나는 한 번 쓰고 닳으면 쉽게 바꾸는 소모품이 된 것 같아 상실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A 간호사는 “모든 일을 의사 명의로 했기에 10년 넘게 병원에서 일했어도 입사 뒤 내가 일한 기록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B 간호사는 “다른 병동에선 알아서 환자를 처리하고 치료하는데 왜 너희 병동은 그렇게 안 하냐며 알아서 처방 낼 것을 강요받았다”며 “거부할 시 필요하지 않은 일들까지 요구하며 퇴근할 수 없도록 하는 보복성 업무 지시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B 간호사는 의사의 불법의료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로서 언제 올지 모르는 의사를 기다리며 초조한 환자, 보호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응급상황이 닥쳤을 때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환자 생명이 위급할 수 있다고 책임감을 느껴 많은 간호사들이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PA로 일하고 있는 C 간호사는 “우리는 전산이나 기록, 차트 어디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라며 “병원이 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병원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일을 시키기 위해 법을 피하고자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C 간호사는 “전공의 정원은 줄고, 전공의 근무 시간은 줄어드는데 의사 인력은 늘리지 않아 PA 종사자가 늘고 있다”며 “아무런 법적 보호와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쓰이고 버릴 수 있는 대체재”라고 호소했다.

좌담회를 마무리하며 나순자 위원장은 “의사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간호사들이 불법의료에 내몰리고 있고, 환자는 속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보건복지부가 나서지 않으면 불법의료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보건의료노조와의 협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어 나 위원장은 “의료인의 양심을 가지고 환자를 속이지 않는 안전한 의료 현장을 만들자”며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전공의협의회에도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불법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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